김승옥 산문집 '내가 만난 하나님'을 읽고
<출판사 - 작가>
김승옥은 서울대 불문과 재학중이던 2학년 때 단편소설 ‘생명연습’이 한국일보 신춘문예에 당선되면서 등단하였다. 그 때가 1962년이었다. 그 뒤 연이어 단편 소설들을 발표했고, 동인문학상과 이상문학상을 수상했다. (대표작: 무진기행, 서울 1964년 겨울, 누이를 이해하기 위하여 등) 영화 시나리오도 썼고, 영화감독도 했다. 그렇게 잘나가던 그가 어느 날 하나님을 만난 뒤 더 이상 소설을 쓰지 않고 문단에서 자취를 감췄다. 천재 작가 한 사람을 잃은 것만 같아 많은 사람들이 아쉬워했다. 그에게 무슨 사연이 있었던 것일까. 나 또한 궁금하여 그가 오랜 침묵을 깨고 2004년도에 대중 앞에 내놓은 신앙 간증집인 ‘내가 만난 하나님’을 읽게 되었다.
김승옥은 1941년도에 일본에서 태어났다. 해방 직후인 1945년에 귀국하여 어머니의 고향인 순천에서 거주하였다. 그 뒤 여순반란사건으로 아버지가 사망했고 어린 여동생이 열병으로 죽었다. 가족의 죽음 때문에 어린 시절부터 김승옥은 인간의 죽음 문제를 심각하게 생각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인간은 죽을 수밖에 없는 존재라는 사실에 대하여 강한 분노와 깊은 슬픔을 느꼈다. 그는 마흔 살이 될 때까지 늘 허무감이 마음 깊이 자리 잡고 있었다고 한다. 초등학교 5학년 때부터 교회에 출석하기 시작하여 고교 3학년까지 교회에 다녔으나 죽은 사람이 천국에 간다는 사실이 실감나게 믿어지지 않았고, 성경을 독파했으나 오히려 신앙심을 잃어버렸다. 소설가가 되었고, 영화각본도 썼고 영화감독도 해보고 잡지사 편집부장도 하며 나이 40이 되었다. 결혼을 했고, 자녀들도 낳았다. 암담했던 1970년대와 80년대 군부 독재 시기를 보내는 동안 충격과 분노 때문에 소설이 써지지 않아 다소 자포자기적인 삶을 살았다. 먼저 교회에 다니기 시작한 아내가 지인과 함께 김승옥을 전도하기 시작했다. 김승옥은 마지못해 교회에 출석했는데 어느 날 캄캄한 밤 중에 하나님의 손이 자신에게 나타났고, “하느님이다”는 말씀을 들었다. (하나님께서 분명히 한국어로 ‘하나님’이 아니라 ‘하느님’이라고 했다고 하며 그는 한국 기독교계가 하느님이라는 용어를 쓸 것을 주장하고 있다.) 그 뒤로도 부활하신 예수님을 직접 만나고 음성을 듣는 등 극적인 체험을 많이 했다. 그는 완전히 변하게 되었다. 술, 담배도 끊고, 소위 예수쟁이가 되었다. 자신의 죄를 철저히 회개하고 20일씩 2번 금식기도 하기도 했고 인도 선교사로 가기 위해 준비하기도 했다. (보지 않고 믿는 자가 더 복되다고 하였지만 나에게도 김승옥이 체험한 것과 같은 체험이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런 생각이 들기도 했다.) 이 책에는 하나님을 만난 극적인 체험과 더불어 하나님을 만난 후 김승옥이 기회가 생겨 해외여행을 하게 되었을 때 신앙적인 관점에서 여행 중 보고 듣고 느낀 것이 기록되어 있고, (프랑스, 그리스, 인도, 이스라엘(시내산), 중국(뤼순 감옥)) 대학시절 열정을 가지고 친구들과 활동했던 문학동인지 <산문시대>에 대해서도 비중 있게 적고 있다. (개인적으로 문학동인지 활동 이야기가 제일 재밌었다. 지금도 유명한 시인, 소설가, 평론가들이 대학시절 순수한 열정으로 뭉쳐서 문학에 대해 얘기하고 꿈꾸고 서로 격려했던 이야기가 풋풋하고 아름답게 느껴졌다. 문학인들의 젊은 시절을 엿볼 수 있었다고나 할까.)
김승옥의 소설들을 읽어보면 대부분이 어둡고 우울하고 암울하다. 아마도 그의 현실 인식이 반영된 것이 아닐까. 그런데 그가 예수님을 만나고 소설이 써지지 않았다고 하니 이해되기도 하고 아쉽기도 하고 그렇다. 책의 뒷부분에 실린 ‘우정의 글’에서 시인 김지하는 “소설을 못 쓰면 어떠리오, 예수 믿으며 살면 되지” 라고 했고, 시인 김성영은 김승옥이 ‘문학 신앙’을 버리고 ‘예수 신앙’을 택하게 되었다고 얘기했다. 화려했던 시절을 그리워하며 다시 소설을 쓰겠다고 만용을 부릴 수도 있는데 그러지 아니하고 오직 예수님께만 집중하는 그의 모습이 감동을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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