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버트 조지 웰스의 ‘투명 인간’을 읽고
(출판사 – 열린책들)
실현 불가능함을 앎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누구나 한번쯤은 자신이 투명인간이 되어보는 상상을 해 보았을 것이다. 그런데 과연 투명인간이 되어 남몰래 선한 일을 하겠다는 사람들이 있을까. 아마도 투명인간이 될 수 있다면 사람들은 자신의 내밀하고도 어두운 욕망을 마음껏 표출할 것이다. 투명인간이라는 모티프는 여러 문학작품이나 신화, 영화 등에서 등장하는데 대표적으로 플라톤의 ‘국가’에 나오는 기게스의 반지 이야기를 떠올려볼 수 있다. 왕에게 고용된 양치기가 투명인간이 되게 하는 반지를 우연히 발견한 후 투명인간이 되어 왕비의 처소에 드나들다 결국 왕을 살해하고 왕국을 차지한다는 이야기다. 한마디로 순진한 양치기가 부도덕한 권력자로 변한다는 것이다. 투명 인간이 되어 선한 일을 하거나 결말이 해피엔딩으로 끝나는 작품을 본 적이 없는데 웰스의 작품에 등장하는 ‘투명 인간’은 다를까? 소설의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영국의 작은 시골 마을에 두터운 외투를 입고 모자를 눌러쓰고 얼굴은 붕대로 친친감고 색안경을 쓴 이상한 차림의 낯선 남자가 나타난다. 그는 여관방에 틀어박혀 화학실험을 하며 시간을 보내는데 그의 비밀(그가 투명인간이라는 것)을 사람들에게 들키자 걸치고 있는 것을 몽땅 벗고 도망친다. (그래야만 사람들이 그를 볼 수 없기 때문이다.) 투명인간은 거리에서 마블이라는 부랑자를 발견하고 그를 협박하여 자신이 머물던 여관방에서 그의 비망록(과학실험노트)과 훔친 돈을 가지고 오라고 시키지만 마블은 투명인간을 배신하고 투명인간의 비망록과 돈을 가지고 달아난다. 이후 투명인간은 잠잘 곳을 찾아 어느 집에 몰래 들어가는데 우연히도 그 집은 투명인간의 대학동창 캠프박사의 집이다. 투명인간은 자신이 그리핀임을 밝히고 과학자로서 했던 실험들, 투명인간이 되고자 했던 계기와 과정, 투명인간이 되고나서 겪었던 어려움 등을 캠프에게 털어놓는다. 그리고 앞으로는 자신의 말을 듣지 않는 인간들은 살해하여 사람들이 두려움에 떨며 그의 명령에 복종하게 만드는 공포정치를 펴겠다고 한다. 그리고 캠프가 조력자가 되어줄 것을 요청하나 캠프는 그에게 동조하지 않고 그리핀을 잡고자 몰래 사람들을 집으로 불러들인다. 그리핀은 또 다시 옷을 벗고 도망치고, 그를 배신한 캠프를 응징하고자 한다. 분노에 찬 그리핀은 아무런 죄도 없는 시민들을 죽이거나 다치게 하는데 치열한 싸움 끝에 그리핀은 시민들에게 구타당한 뒤 만신창이가 되어 비참하게 죽는다. 그가 죽고 나자 불투명했던 원래 그의 몸이 사람들에게 드러난다.
이 소설에 나오는 투명인간은 우리가 생각하는 그런 완벽한 투명인간이 아니다. 자신의 몸만 투명하기 때문에 사람들이 자신의 존재를 모르게 하려면 아무것도 걸치지 않아야 하고 (그러기에 추위와 육체적 고통에 시달려야했다.)자유자재로 투명인간과 불투명인간을 왔다 갔다 할 수도 없다. (그는 한 번 투명인간이 된 후 수 많은 실험을 했지만 다시 원래대로 돌아갈 수가 없었다.) 또한, 투명인간은 망막에 사물의 상이 맺힐 수 없으므로 그 또한 볼 수 없지만 이 소설에서는 그러한 점은 무시하고 허구의 투명인간 이야기를 그려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소설은 인간이 초인적인 힘을 가지게 될 때 얼마나 추악해지고 타락할 수 있는지, 그것이 얼마나 사람들에게 큰 공포와 위협이 될 수 있는지를 잘 보여주고 있다. 그리고 투명인간이 초인적인 능력을 가지게 된 대신 사람들과 교제할 수 없고 홀로 고독하게 살 수 밖에 없었음을 볼 때 초인적인 능력을 갖는 것이 좋은 것만은 아니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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