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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의 여종이오니
주의 여종이오니 눅1:26-38(38) ‘마리아가 이르되 주의 여종이오니 말씀대로 내게 이루어지이다 하매 천사가 떠나가니라’ 누가복음 1장과 2장은 성탄절에 주로 듣는 말씀입니다. 그래서인지 성탄절이 아직 석달이나 남은 지금 시점에서 오늘 본문은 그 느낌이 조금 새롭습니다. 예수님의 탄생을 중심으로 한 성탄 말씀이 아닌 마리아의 고백을 중심으로 오늘 본문을 새롭게 살펴보고자 합니다. 엘리사벳이 요한을 잉태한 지 여섯째 달 되는 시점에 천사 가브리엘이 하나님의 보내심을 받아 갈릴리 나사렛이란 동네로 향했습니다. 훗날 갈릴리 나사렛은 우리가 잘 아는 것처럼 예수님의 출신지로 알려질 곳이었습니다. 이곳에 다윗의 자손 요셉과 약혼한 처녀 마리아가 살고 있었습니다. 천사 가브리엘이 나사렛을 찾은 이유도 마리아를 만나는 데 있었습니다. 가브리엘이 마리아에게 말했습니다. “은혜를 받은 자여 평안할지어다 주께서 너와 함께 하시도다” 천사는 마리아에게 샬롬!이라 인사하며 평안을 빌었지만 정작 이 말을 들은 마리아는 깜짝 놀라며 ‘이런 인사가 어찌함인가’ 속으로 생각했습니다. 지금 마리아가 바라는 것은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것이었습니다. 요셉과 약혼 상태인 마리아는 어서 시간이 흘러 무탈하게 결혼식 올리기를 바랐습니다. 그 전까지 자신이나 요셉 신상에 그 어떤 변화도 일어나면 안 되었습니다. 저는 직장에서 몇몇 크리스쳔들과 기도모임을 이루고 있습니다. 직장 신우회에서 만나는 크리스쳔들은 그 삶과 신앙의 모양이 정말 다양합니다. 그에 비하면 우리 센터 목자님들은 성격이나 라이프 스타일, 신앙의 자세가 비교적 비슷합니다. 아무튼, 기도모임을 함께 이루고 있는 한 사람은 매번 똑같은 기도제목을 제시합니다. ‘전 지금 이대로가 좋습니다. 큰 욕심도 없고, 남부러운 것도 없습니다. 그냥 이대로 유지되기를 기도해주세요.’ 솔직히 처음에는 그의 기도제목이 황당해 보였습니다. 뭐 이런 기도제목이 있나 싶었습니다. 하지만 부인할 수 없는 것은 오늘날 생각보다 많은 크리스쳔들이 이와 비슷한 기도제목을 갖고 있거나 비슷한 심정이라는 사실입니다. 안정적인 직장을 다니고 있고, 사랑하는 아내와 결혼해서 한 두 명의 자녀를 낳아 키우며 알콩달콩하게 살아가는 소시민적인 신자들의 경우, 하나님께 크게 바라는 것도 없고 하나님을 원망하거나 하나님의 존재나 사랑을 진지하게 고민하지도 않습니다. 그저 바라는 것이 있다면 가족들의 건강이고 좀 더 노골적으로 표현하면, 제 직장 동료처럼 ‘그냥 지금 이대로’ 유지되게 해달라고 기도할 뿐입니다. 이런 사람에게 어느날 갑자기 천사가 나타나 “은혜를 받은 자여 평안할지어다 주께서 너와 함께 하시도다”라고 한다면 아마도 마리아와 똑같은 반응을 보일 것 같습니다. ‘처녀가 그 말을 듣고 놀라 이런 인사가 어찌함인가 생각하매’ 이렇게 말하는 저 역시 예외는 아닙니다. 현재 저의 카톡 대문 글귀가 ‘소소한 일상에서 누리는 기쁨’입니다. 저는 주일 오후엔 가급적 동역자와 함께 개운산 산책을 합니다. 아이들을 데리고 가기도 합니다. 지난 겨울 어느 주일 오후, 평소처럼 개운산 산책을 세 아이를 포함한 온 식구가 갔을 때 갑자기 함박눈이 펑펑 쏟아졌습니다. 순식간에 산 전체가 하얀 눈으로 덮였습니다. 겨울이 다가고 있던 2월 마지막 주일 오후, 저희 가족은 생각지도 않았던 함박눈을 맞으며 눈싸움도 하고 눈사람도 만들고 놀았습니다. 그때 느낀 것이 아, 이런 것이 행복이구나, 행복은 멀리 있지 않구나였습니다. 이 일을 계기로 카톡 대문 글귀를 그렇게 적었고 그때 만든 다섯 식구 눈사람 가족을 찍은 사진을 대문 사진으로 걸었습니다. 여기까지는 좋은데 그런데 제 자신이 말 그대로 소소한 일상에서 누리는 행복과 재미에 너무 젖어 살고 있지는 않은지 솔직히 두렵습니다. 지금의 제게 만일 천사 가브리엘이 나타나 예수님을 잉태하게 되었다는, 그런 정도의 엄청난 사명까지는 아니어도 관성적인 삶의 패턴을 깨뜨릴 만한 사명을 주신다면 제가 과연 영접할 수 있을지 자신이 없습니다. 하나님의 사명은 위대합니다. 이 위대한 사명을 감당하는 사람 또한 위대한 삶을 살게 됩니다. 중요한 것은 위대한 사명을 우리가 과연 영접할 것인가, 그런 기회가 왔을 때 영접할 수 있겠는가?입니다.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을 잉태하게 되었다는 천사의 말에 마리아는 어떻게 반응했습니까? 다 같이 38절을 읽겠습니다. ‘마리아가 이르되 주의 여종이오니 말씀대로 내게 이루어지이다 하매 천사가 떠나가니라’ 마리아는 이렇게 말하며 천사가 전해준 위대한 사명을 영접했습니다. “주의 여종이오니 말씀대로 내게 이루어지이다” 지금 한글성경에서는 표현이 많이 순화되었는데 전에 개역한글판에서 “주의 계집종이오니”로 되어 있었습니다. 주의 여종, 이것이 마리아의 자기 정체성이었습니다. 마리아라고 왜 사명을 영접하는 데에 마음의 어려움이 없었겠습니까? 몹시 힘겨웠으리라 생각합니다. 힘들지만 그래도 하나님의 뜻을 영접하게 된 데에는 다른 것 없습니다. ‘주의 여종’이라는 분명한 자기 정체성이 나에게 온 부담스러운 사명조차 기꺼이 영접하게 만들었습니다. 요즘 학생 역사를 섬김에 있어서 이런저런 고민이 많아지고 있습니다. 특히 학생들 가운데 2세들 비중이 많아지면서 그 비중이 더욱 커지고 있습니다. 전에는 적어도 모임에 남은 자들은 목자로 살고자 하는 소원을 가졌습니다. 그것이 부담스럽고 싫으면 스스로 모임을 떠났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그렇지 않은 것 같습니다. 2세들에게 센터는 목자라는 정체성이 분명하지 않아도 충분히 머무를 만한 곳입니다. 이런 상태의 사람들에게 절실한 것이 하나님 앞에서의 분명한 자기 정체성이 아닌가 싶습니다. 예수님의 보혈로 구원받은 우리는 세상에 대하여는 자유인이요, 하나님께는 종입니다. 이중적인 자기정체성이 필요합니다. 그런데 이를 혼동하는 사람들이 많은 것 같습니다. 세상에는 얽매임이 많으면서 하나님 앞에서만 자유한 신자들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이 세상을 만드신 창조주요, 이 세상 만물을 그 뜻대로 통치하시는 주권자입니다. 사람의 생사화복이 그 손에 달렸습니다. 하나님이 오늘 오라 하시면 갈 수 밖에는 없는 존재가 바로 우리입니다. 하나님의 주권 앞에 우리는 그 분의 종이라는 진리를 다시금 인정하고 고백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제가 순간순간 세상의 잔재미에 빠져 영적으로 방황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것 한 가지만을 분명하게 인정합니다. 저는 예수 그리스도의 종입니다. 저는 캠퍼스 대학생들의 목자요, 성경선생입니다. 그리고 기도하고 싶은 것 한 가지가 있습니다. 우리에게 해외 선교사라는 천사들을 시시때때로 보내주셔서 영적으로 잠든 우리를 깨워주시고 부끄럽게 해주시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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