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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몬 드 보부아르의 '제2의 성'을 읽고
(동서문화사/ 이희영 옮김) 이 책은 1000 페이지 가량 되는 매우 두꺼운 책이다. 나는 장장 6개월에 걸쳐서 이 책을 다 읽었다. 내용 이해는 둘째치고 어렵고 두꺼운 책을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읽은 나 자신을 칭찬해주고 싶다. 보부아르는 20세기 중반 프랑스의 실존주의 작가, 철학자 및 여성해방운동가이다. 사르트르와 계약결혼을 한 것으로도 유명하다. ‘제2의 성’이라는 제목은 세계의 중심이자 인간을 대표하는 성인 ‘남성’과 대비되는 개념으로서의 여성을 표현하고 있다. 이 책은 여성이 처한 상황, 이들이 겪는 어려움, 불평등에 관하여 이야기하고 있다. 보부아르가 이 책을 쓸 당시인 1900년대 중반은 이전보다는 여성의 인권이 많이 신장 되었던 시대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것은 완성단계가 아닌 막 걸음마를 시작하는 단계였고 여성이라는 존재에 대해 다각도로 깊이 있게 통찰한 책이 없었기 때문에 보부아르는 오랜 고민 끝에 심혈을 기울여 이 책을 쓰게 된다. 이 책은 ‘여성에 대한 모든 것’이라는 느낌이 들 정도로 정말 다양한 측면에서 여성이라는 존재를 살펴보고 있다. 목차에 따라 좀 더 구체적으로 나열해보자면 생물학적인 조건, 정신분석적인 견해, 유물사관의 입장, 고대와 과거 역사 속에서, 문학과 신화에서의 여성(개인적으로 이 부분이 제일 어렵고 지루했다.) 그리고 유년기, 젊은 처녀, 기혼 여성, 어머니, 노년기, 매춘부, 레즈비언, 여성의 성, 나르시시즘, 신비주의, 독립한 여성 등 여성에 대해 다방면에서 고찰하고 있다. 이 책의 주요 개념어는 주체, 객체, 타자, 소외, 자기초월, 자유, 기투 등이다. 이러한 개념어들은 실존주의 철학에서 쓰는 것들인데 프롤로그에서도 밝혔듯이 저자는 이 책에서 여성에 대하여 말하면서 행복이라는 관점이 아니라 실존주의적인 관점에서 즉, 자유의 관점에서 말함을 분명히 하고 있다. 저자의 핵심 주장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여성은 남성에 대하여 처음부터 열등하고, 비본질적이고, 타자인 존재가 아니라 사회에 의하여, 남성에 의하여 그렇게 규정되고 만들어졌다. 여성이 무능한 이유는 사회가 여성이 능력을 계발하고 발휘할 기회조차 주지 않았기 때문이다. 흑인, 유대인, 노동자계급, 노예 등 억압을 받는 계층에 있었던 사람들은 서로 연대를 했고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싸웠지만 여성들은 소외된 계층으로 살아왔음에도 불구하고 자신들의 목소리를 내고 권리를 지키기 위해 서로 연대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백인 여성은 흑인 여성과 연대하기보다 백인 남성과 연대하고 부르주아 여성은 부르주아 남성과 연대하지 프롤레타리아 여성과 연대하지 않기 때문이다. 타자가 되기를 거부하고 남자와의 공모를 거절하는 일은, 여자들에겐 상층계급인 남성 사회가 자기들에게 부여할지도 모르는 이익을 단념하는 일이 된다. 영주인 남자는 가신인 여자를 물질적으로 보호해주고 그 삶의 도덕적 정당화를 책임진다. 그러므로 이 경우 여자는 경제적 위험뿐만 아니라, 스스로 자기의 목적을 찾아야 할 자유라는 형이상학적 위험도 회피할 수 있다. 그러므로 여자를 타자로 만들어 버리는 남자는 여자 속에서 뿌리 깊은 공범 기질을 발견한다. (쉽게 말하면, “여성들이여, 너희들이 지금 이렇게 된 데에는 여성의 인권을 위해 싸우고, 힘써 자신의 길을 개척하기보다 남성의 보호 아래서 편하게 사는 것을 택한 너희들 책임도 있어!” 이런 말이다.) 되풀이해서 말하지만, 인간사회에는 자연적인 것은 없으며, 특히 ‘여자’는 문명에 의해 고안된 산물이다. 진정한 사랑이란, 반드시 두 사람의 자유가 서로 상대방을 인정하는 기초 위에 세워져야 한다. 이 때 두 사람은 서로를 자기 자신처럼 또는 타자처럼 느끼면서, 어느 한편에서도 자기 초월을 포기하지 않고 또 자기를 불구로 만드는 일 없이 함께 세계 속에서 가치와 목적을 발견할 것이다. 또한 자기를 줌으로써 자기 자신을 찾고 세계를 풍요롭게 할 것이다.> 나는 지금까지 여성, 여성의 삶, 여성으로서의 나에 대하여 생각해 본 적이 별로 없었는데 이 책을 읽고 인구의 절반인 여성이 어떤 존재인지, 여성으로서 나는 어떤 존재인지 이전보다 잘 알게 되었다. 그리고 내가 해야 할 고뇌와 짊어져야 할 책임을 회피하고 남성에게 의존하여 살고 싶어 했던 것을 반성하게 되었다. “나는 여자라서 안돼"라고 스스로를 가두었던 생각들도 조금씩 거두어가야겠다. 지금은 상황이 많이 좋아져서 성의 구분이 거의 없을 정도로 여성들의 사회진출이 활발하다. 그러나 여전히 우리 사회에서, 가정내에서 보이지 않게 작용하는 여성들에 대한 차별, 편견, 제약 등이 있다. 그렇기 때문에 출간된지 70여년이 지난 지금에도 보부아르의 이 책이 사람들에게 읽히고 관심을 받는게 아닌가 싶다. 더 이상 이 책이 출간되지도 않고 읽히지도 않고 사람들의 관심도 받지 못하는 그러한 때가 온다면 보부아르는 자신의 책이 이 세상에서 사라진다고 해도 무척 기뻐할 것이다. <비판점> 저자의 주장 중 반박하고 싶었던 것 중 한 가지는 집안일을 주로 하는 주부라는 역할과 위치를 상당히 무시하고 있다는 점, 사회생활을 하고 직업을 갖는 것만이 자기를 초월하고 자아를 실현하는 의미 있는 것이라고 한 점이다. 가정주부에 대하여 사회나, 집안 식구들 심지어 가정주부인 자신까지도 자신의 역할과 위치를 하찮고 의미 없는 비본질적인 것으로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이것은 마치 화이트 칼라의 일은 대단한 가치가 있고 블루 칼라의 일은 하찮다고 생각하는 것과 같다.(블루 칼라들이 하루만 파업해도 그들의 가치를 알게 될 것이다.) 주부로서의 삶은 직장인의 삶 못지않게 힘든 면들이 많다. 무미건조한 일을 끊임없이 반복해야 하고, 창조하는 기쁨이 없고, 성취감도 없다. 그리고 타인과 교류하는 일에서 느끼는 즐거움이 없다. 어떻게 보면 그것은 드러나지 않게 수고하고 희생하는 일이다. (직장생활이 힘들다는 것은 모두가 인정해주지 않는가!) 그러나 그러한 수고와 희생 덕분에 다른 가족 구성원들이 안정적으로 사회생활을 해 나갈 수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가정주부의 일을 하찮게 여길 것이 아니라 굉장히 높이 평가해줘야 한다. 저자는 여성과 남성이 우열이 있는 존재가 아니라 상호관계적인 존재가 되어야 한다고 했다. 가정주부와 직장인의 관계도 마땅히 그래야 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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