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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륵의 '압록강은 흐른다'를 읽고
(이옥용 옮김. 네버엔딩 스토리 출판사. 247쪽) 여행길에 가볍게 읽을 용도로 소설 책을 고르던 중 그리 길지 않아 보이고 전부터 들어봤던 유명한 작품이라 이 책을 집어들게 되었다. 먼저 작가에 대해 간단히 말하자면 다음과 같다. ‘이미륵’이라는 이름은 본명이 아니고 작가의 필명이자 아명이다. 본명은 이의경이고 1899년 황해도 해주에서 태어났다. 해주보통학교를 졸업하고 경성의학전문학교에서 의학을 공부하다가 3.1 운동에 참여하였는데 신변의 위협을 느끼고 중국 상하이를 거쳐 1920년에 독일로 망명하였다. 뮌헨대학교에서 동물학, 철학, 생물학을 전공했고 1931년 문예지 <다메>에 독일어로 단편소설을 발표하면서 작가 활동을 시작하였다. 1946년에 출간한 자전소설 ‘압록강은 흐른다’는 독일어로 쓰인 올해의 최고의 책에 선정되었다. 1950년에 위암으로 타계하였는데 그레펠링 시립 공동묘지에 안장되었다. 자전소설이어서 그런지 작품을 읽는 내내 소설이 아닌 자서전을 읽는 기분이 들었다. 작가가 다섯 살 무렵이었을 때부터 소설은 시작되고 있는데 6개월 빨리 태어난 개구쟁이 사촌 형과 함께 즐겁게 놀았던 어린시절 얘기가 초반부의 주를 이루고 있다. 소설의 문체나 내용은 대체로 평이하지만 그러면서도 아름답고 서정적이다. 교육열이 높았던 이미륵의 아버지는 이미륵이 다섯 살 때부터 한학을 가르치셨다. 그 뒤 우리나라에 신식학교가 들어서고 서양학문이 들어오자 미륵이를 신식학교에 보내 공부를 시킨다. 이미륵은 머리가 뛰어난 편은 아니지만 꾸준함과 성실함으로 공부를 해 나가고 마침내 높은 경쟁률을 뚫고 경성의학전문학교에 입학하게 된다. 그러다가 학생 신분으로 3.1운동에 가담하게 되는데 3.1운동 뒤 감시가 심해지고 핍박이 생기자 어머니의 권유로 이미륵은 독일로 망명을 가게 된다. 소설은 이미륵이 독일에 간지 얼마 안 되었을 때 어머니께서 돌아가셨다는 편지를 받는 것으로 끝난다. 나는 이 소설을 읽으면서 이미륵, 이미륵의 아버지, 이미륵의 어머니의 좋은 성품과 인간성에 감명을 받았다. 이미륵이 신식학교 공부를 잘 따라가지 못하자 어머니는 아들에게 다음과 같이 말씀하신다. “네가 이 학교에서 공부를 잘 못해도 슬퍼할 필요 없어. 우리 모두에게 낯선 이 새로운 문화가 네게 맞지 않는 것일 뿐이야. 학교를 다니기 전 몇 년 동안을 생각해 보렴! 네가 얼마나 쉽게 고전과 시를 배웠는지 말이야. 넌 무척이나 총명했지! 너를 괴롭히는 신식 학교는 그만두고 올 가을에 송림 마을로 가서 푹 쉬렴...........(중략) 불안하기 짝이 없는 이 고을보다 한적한 시골 마을에 있으면 네가 무럭무럭 잘 자랄 거야, 너는 구시대의 아이거든!” 아이가 학교 공부를 못 따라가는데 실망하거나 다그치지 않고 이렇게 말해 줄 수 있는 자애롭고 지혜로운 어머니(부모)가 얼마나 될까?... 또 이미륵을 경성의학전문학교로 유학보내기 전과 유럽으로 도망치듯 떠나보내기 전 어머니는 아들에게 각각 다음과 같이 말한다. “네가 누차 얘기한 것처럼 시대는 변했어. 다른 사람들은 새로운 문화를 받아들여 우리보다 앞섰어. 그네들은 종종 무례한 짓도 범하지. 하지만 너는 네 온화한 성품을 부디 잃지 말고, 그들에게서 무언가 배우려거든 그들의 교양 없고 무례한 면도 감수하렴.” “넌 겁쟁이가 아니란다. 넌 곧잘 낙심을 하긴 했지만, 네가 가고자 하는 길에 늘 충실했지. 난 전적으로 너를 믿는단다. 용기를 내렴! 어렵지 않게 국경을 넘고, 결국엔 유럽에 도착할 거야. 어미 걱정은 하지 말거라! 난 네가 다시 돌아올 때까지 조용히 기다릴 거야. 세월은 정말 빨리 간단다. 하지만 우리가 다시 만나지 못해도 너무 슬퍼하지 마렴! 너는 지금껏 내 삶에 정말 많은 기쁨을 안겨 주었단다. 자, 우리 아들, 지금부터는 혼자 가렴” 이미륵의 아버지는 엄한 선생님 같으면서도 다정한 친구같은 분이셨고 어머니 또한 아들에게 자애로우면서도 용기를 북돋워주는 지혜로운 어머니셨다. 어머니, 아버지가 이렇게 저렇게 하라고 말씀하시면 이미륵은 항상 이렇게 말했다. “네, 아버지가 가라시면 갈게요.” “네, 어머니가 하라고 하시면 할게요.” 훌륭한 부모와 훌륭한 자녀의 본보기를 보는 듯하다. 보통 조선말기시대 소설이라고하면 너무나 슬프거나 너무나 극적이어서 소설을 읽을 때 마음이 힘들기도 했는데 이 소설은 그렇지 않고 소소한 사건들 중심으로 담담하게 이야기를 풀어가서 읽기가 편안했고 그 시대를 살았던 평범한 사람들의 일상을 엿볼 수 있어서 좋았다. 이 책의 후속작으로 ‘그래도 압록강은 흐른다’가 있다. 언젠가는 이 책도 읽게 되지 않을까 싶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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