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F. 스콧 피츠제럴드의 '위대한 개츠비'를 읽고
(출판사-책세상, 정회성 옮김, 299쪽) 8년전쯤에 이 소설을 처음 읽었었는데 그때는 이 작품에 대해 큰 감흥을 느끼지 못 했었다. 그런데 8년이 지나서 다시 읽어보니 느끼게 되는 점들이 많았다. 먼저, 줄거리를 간단히 적자면 다음과 같다. (옮긴이가 작품 뒤에 친절하게 줄거리를 잘 적어주어서 그것을 그대로 옮겨본다.) 이야기는 닉 캐러웨이의 관점에서 1922년 초여름 뉴욕 롱아일랜드의 웨스트에그를 배경으로 펼쳐진다. 중서부 출신의 닉 캐러웨이는 증권업을 배우려고 웨스트에그로 와서 이웃 저택에 사는 제이 개츠비의 친구가 된다. 웨스트에그 건너편 상류층 거주지인 이스트에그는 닉의 먼 친척뻘인 데이지와 그녀의 남편이자 닉의 대학 동창인 톰 뷰캐넌이 살고 있다. 출처 분명의 막대한 부를 소유한 개츠비는 주말 밤마다 수백 명을 저택으로 불러 모아 호화로운 파티를 연다. 그 파티에서 닉이 만나는 손님 가운데 개츠비의 과거를 아는 사람은 거의 없다. 그저 개츠비가 옥스퍼드에서 공부했다느니 제1차 세계대전에 참전했다느니 살인을 저질렀다느니 등의 소문만 무성할 뿐이다. 어느 날 개츠비의 초대를 받아 파티에 간 닉은 데이지의 친구인 조던 베이커한테서 개츠비의 비밀을 듣게 된다. 개츠비와 데이지는 과거에 서로 사랑하는 사이였는데, 개츠비가 아직도 데이지를 잊지 못해서 그녀를 다시 만나기 위해 그녀 집 건너편에 저택을 사고 대규모 파티를 연다는 것이다. 데이지는 열여덟 살 때 장교인 개츠비와 연인 관계였지만 집안의 반대로 헤어지고 조건 좋은 톰을 택해 결혼했다. 그런데 톰은 자동차 정비공 윌슨의 아내 머틀과 공공연하게 바람을 피운다. 개츠비와 데이지는 닉의 주선으로 재회한다. 톰은 이 사실을 알고 뉴욕의 호텔 스위트룸에 모인 지인들 앞에서 개츠비의 부정한 정체를 폭로해버린다. 개츠비는 데이지에게 더 이상 사랑하지 않는 톰을 떠나 자신에게 돌아오라고 보챈다. 하지만 데이지는 끝까지 대답을 피한다. 한편 아내 머틀의 불륜 사실을 눈치챈 윌슨은 그녀와 말다툼을 벌인다. 그때 머틀은 집 밖을 지나는 차를 보고 흥분해 뛰쳐나갔다가 그만 차에 치여 즉사한다. 그 차에는 개츠비와 데이지가 같이 타고 있었는데 운전한 사람은 데이지다. 하지만 톰은 윌슨에게 그 차를 몬 것은 개츠비라고 말한다. 그러고는 개츠비가 어디 사는지 알려준 뒤, 데이지와 함께 멀리 여행을 떠날 준비를 한다. 윌슨은 아내의 외도 상대이자 아내를 죽인 범인이 개츠비라고 믿는다. 그는 데이지의 전화를 기다리며 저택 수영장에 있는 개츠비를 총으로 쏴 죽인 뒤 자살한다. 개츠비의 장례일에 데이지는 조문도, 한 송이 조화도 보내오지 않는다. 개츠비의 파티에 참석한 수많은 손님 중 장례식에 나타난 사람 또한 한 명도 없다. 결국 장례식은 닉, 개츠비의 아버지 개츠 씨 등 두 세 사람만 참석한 채 쓸쓸하게 치러진다. 장례식이 끝난 뒤 닉은 환멸을 느끼고 뉴욕을 떠나 고향으로 돌아간다. 소설을 읽을 때 이성적으로 분석하고 사고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읽으면서 어떤 감정이 들었는지, 어떤 느낌이 들었는지도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이 소설을 읽고나서 든 첫 번째 느낌(감정)은 ‘말문이 막힌다’, ‘어안이 벙벙하다’였다. 한마디로 말하면 ‘어이가 없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어떤 점에서 어이가 없었고 말문이 막혔는지를 밝히면 다음과 같다. 부부가 각자 다른 상대와 불륜을 저지르고, 이미 결혼한 옛 연인을 잊지 못해 찾아가서 자신과 다시 결혼하자고 하고, 자신의 목적을 이루기 위해서라면 불법이거나 말거나 상대방에게 해가 가해지거나 말거나 상관없이 어떤 일이든지 하고, 거짓말을 일삼는 등..이 소설속 인물들에게서는 ‘도덕’이라는 것을 눈꼽만큼도 찾아볼 수 없기 때문이다. 심지어 자신의 남편이 불륜을 저지르는 것을 알고 있으면서도 그가 가진 재산 때문에 불륜을 눈감아주기까지 하고, 자기에게 이익이 될 때는 관계를 맺으며 어울리다가도 자기에게 손해가 될 것 같으면 “나는 그 사람 모릅니다” 할 정도로 비정하게 돌아선다. 나는 이 소설을 비판하는 것이 아니다. 이 소설은 매우 잘 쓰여졌고 훌륭한 작품이다. 내가 비판하는 것은 소설 속의 인물들이다. 그리고 작가가 그러한 것들을 우리에게 보여주려고 캐릭터들을 아주 잘 만들어냈다고 생각한다. 어떤 사람들은 개츠비가 순수한 사랑을 끝까지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작품 속 다른 속물들과 달리 위대하다고 말한다. 또 어떤 사람들은 개츠비도 다른 인물들과 다름없다고 말한다. 누구의 생각이 맞고 누구의 생각이 틀리다고 말하기가 어려운 것 같다. 다만 수많은 독자 중 한 명의 독자로서 나는 개츠비의 사랑이 순수하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어리석다고 생각한다. 데이지는 외적으로만 매력적으로 그려질뿐 굉장히 속물로 그려지는 여자이다. 데이지는 개츠비가 부유한 것 같아서 좋아했다가 사실은 그렇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되어서 그를 버린다. 그리고 부자인 남자를 선택하여 결혼한다. 그런데 개츠비가 부유해지자 그에게 다시 마음이 기울었다가 현재 남편 톰의 부와 지위도 놓칠 수 없어서 갈팡질팡하였다. 그녀는 개츠비가 죽었다는데도 모른 척한다. 개츠비가 좋아한 것은 누구로도 대체할 수 없는 데이지라는 고유한 한 여성이라기보다는 모두가 가지고 싶어하는 부유하고 매력적인 한 존재라고 생각된다. 세월이 좀 더 흘러 이 작품을 다시 읽었을 때도 내 생각이 변함없을지 아니면 지금 생각하지 못한 다른 것들을 생각하게 될지는 알 수 없다. 개츠비의 꿈은 “타락하지 않은 순결한 꿈”인지 “해를 묵혀 가면서까지 간직한 빛바랜 꿈”인지 각자가 읽어보고 판단하기를 바란다. |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