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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퍼리의 '앵무새 죽이기'를 읽고
(열린책들 출판사, 하퍼리 지음, 김욱동 옮김, 539쪽) 어떤 책이길래 많은 사람들이 이 작품을 그토록 높이 평가하고 좋아하는가 하는 호기심이 들어서 읽어보게 되었다. 이 소설은 1930년대 미국의 어느 작은 마을 메이콤을 배경으로 한다. 주인공 스카웃(열살이 채 되지 않은 어린 소녀이다.)과 그의 오빠 젬, 친구 딜, 변호사인 아빠 애티커스 핀치, 이웃에 사는 은둔자 부 래들리 등이 주요 등장인물인데 초반부는 스카웃과 젬, 딜의 개구진 행동들에 대한 이야기가 주를 이룬다. 이 아이들은 이웃에 사는 은둔자 부 래들리 아저씨에 대한 호기심으로 가득한데 한 번도 본적이 없지만 그 집에 살고 있는 것만은 확실한 부 래들리에 대해 상상의 나래를 마음껏 펼친다.(그 아저씨는 사람을 잡아먹는다는 둥..하는 기괴한 쪽으로 말이다.) 그리고 비밀작전을 펼쳐 그 집 안을 들여다보고자 기웃거리지만 번번히 실패하고만다. 500페이지 가까운 소설의 거의 반이 이런 이야기들로 이루어져 있어서 처음에는 “이게 뭐지? 어린아이들의 천진난만한 장난으로 가득한 이 소설에 왜 사람들이 열광하는거지?” 하고 의문이 뭉개뭉개 피어올랐다. 인내심을 가지고 좀 더 읽어보면 뭔가가 나오려나..하는 심정으로 계속해서 소설을 읽어나갔는데 소설의 중심 소재와 주제는 후반부에 가서야 등장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아이들의 아버지인 애티커스 핀치 변호사가 백인여성을 강간한 혐의로 체포된 한 흑인 청년(톰 로빈슨)을 변호하게 된 사건이 등장함으로 비로소 정말 중요하고 흥미진진한 이야기가 시작된다. 핀치 변호사가 관선 변호사로서 이 청년의 변호를 맡게 되는데(요즘으로 치면 국선 변호사이다.) 피고 쪽 주장과 달리 톰 로빈슨과 핀치 변호사는 피고가 강간을 저지르지 않았고 무죄하다는 것을 주장한다. 이 소설을 잘 이해하려면 당시 미국에서 흑인의 인권이 어떠했는지에 대한 배경지식이 필요하다. 지금이야 너무나 당연하게 생각되던 흑인의 인권이 당시에는 전혀 존중되지 않던 시절이었다. 저 유명한 로자 파크스 사건(버스 좌석을 백인에게 양보하지 않아서 승차 거부를 당한 사건)이 일어난 것이 1955년 12월이었다. 이 소설이 출간된 것이 1960년이고 소설의 배경이 1930년대임을 생각할 때 흑인 남성이 백인 여성을 강간한 죄로 고소당했을 때 사람들의 반응이 어떠했겠는가를 떠올려보라. 그리고 그런 흑인 범죄자를 위해 백인 남성 변호사가 변호를 한다고 했을 때 무슨일이 벌어졌을지를 상상해보라. 이 상황을 명약관화라고 표현할 수 있는데 쉽게 말하면 ‘안봐도 비디오’라는 말이다. 동네 사람들은 범죄자 흑인을 변호하는 애티커스 변호사와 그의 자녀들에게 갖은 모욕을 퍼붓고 협박하고, 심지어 신체적인 위협까지 가한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애티커스 변호사는 옳은 것을 위해, 정의를 위해, 약자를 위해 온갖 위협과 위험을 무릅쓰고서 톰 로빈슨의 변호에 최선을 다한다. 이 소설이 위대하다고 평가받는 것은 바로 이 지점이다. 톰 로빈슨이 강간을 저질렀다고 여성측으로부터 고소를 당하였는데 실상은 백인여성인 메이엘라 유얼이 흑인 청년 톰 로빈슨을 유혹했다. 그런데 가정이 있는 그가 유혹을 물리치자 메이엘라는 거기에 앙심을 품고 톰 로빈슨이 자신을 강간하려 했다고 고소를 한 것이다.(메이엘라의 아버지 밥 유얼도 진실을 알고 있으나 톰 로빈슨이 자신의 딸을 강간하려 했다고 거짓 고소를 한다.) 이 대목에서 성경 창세기에 나오는 요셉과 보디발의 이야기가 떠오르지 않을 수 없다. 남편이 있는 보디발이 종으로 팔려온 히브리 노예 요셉을 유혹하려다가 그가 유혹을 물리치자 요셉이 자신을 강간하려 했다고 거짓 고소를 하였고 요셉은 무고하게 감옥에 갇힌다. 다시 <앵무새 죽이기> 소설로 돌아가보자. 당시에 강간죄를 범할 경우 사형에 처해지게 되는데, 톰 로빈슨은 이 사건에 휘말리게 된 순간부터 자신이 죽게 될 것을 예상했고 그래서 무죄인 것을 밝히려는 노력도 포기한채 자포자기 상태로 지낸다. 왜냐하면 아무도 흑인인 자기의 말을 믿어주지 않을 것을 알기 때문이다. 변호사 애티커스가 법정에서 완벽한 논리로 그의 무죄를 밝혀냈음에도 불구하고 배심원들은 톰 로빈슨에게 유죄판결을 내린다.(“네가 뭐라하든 심지어 네가 옳다고 해도 너는 흑인이니까 무조건 유죄야.” 거의 이런 식이다.) 톰 로빈슨은 감옥에서 도망치려다가 발각되어 그 자리에서 무차별하게 총살을 당하여 죽고 만다. 공포탄도 있고 그를 제압할 수도 있는데 그에게 여러 발의 총을 쏴서 기어코 그를 죽인다. 그는 한 쪽 팔을 쓸 수 없는 불구자였는데도 말이다. 창세기의 요셉이 온갖 고난을 거친 후 나중에 영화로운 지위에 오르게 된 것과는 대조적이다. 미국의 조상들은 독립 선언문과 헌법에 <모든 인간은 평등하게 창조되었다>라고 적었으면서도 그들이 말하는 ‘인간’속에 흑인을 비롯한 유색인종과 여성이 빠져있다는 것이 큰 모순이 아닐 수 없다. 이 소설이 출간된지 60여년이 지났다. 60년이라면 강산이 몇 번도 더 변하고도 남을 아주 오랜 기간이다. 첨단 기술이 눈부시게 발달하고 세련된 물건들과 기술들, 제도들이 생겨났다. 그런데 흑인들의 인권은 그만큼 눈부시게 나아졌을까? 우리는 아직도 뉴스에서 백인 경찰들이 흑인들을 과도하게 진압하여 흑인들이 총에 맞아 죽는 사고가 일어난 것을 본다. 경찰들이 상대하는 대상이 백인이라도 그랬을까? 명문화된 법과 심판보다 더 무서운 것이 사람들이 마음 속에 가지고 있는 마음의 법과 심판이다. 글로 쓰여 있는 법은 흑인을 평등하다고 하고 인권이 존중되어야한다고 하겠지만 사람들은 그렇게 흑인을 바라보지 않고 그렇게 대우하지 않는다. 최근에 <다정한 것이 살아남는다> 라는 책을 읽었는데(저자: 브라이언 헤어, 버네사 우즈, 디플롯 출판사, 2021년 출간, 393쪽) 흑인에 대한 사람들의 인식에 대해 조사한 글을 읽고 충격을 받았었다. 다음은 “<다정한 것이 살아남는다> p.221-222”에서 인용한 글이다. 정치학자 애슐리 자디나는 모든 인구 범주를 꼼꼼하게 분류하여 구성한 미국 백인 대표 그룹 2000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실시했다.(2005) 자디나는 크테일리의 <인간의 상승 척도>를 보여주고 흑인이 백인에 비해서 얼마나 진화했다고 생각하는지 물었다. 평균적으로 백인들은 크테일리의 <인간의 상승 척도>에서 흑인이 백인보다 덜 진화되었다고, 즉 흑인이 유인원에 더 가깝다고 응답했다. 자디나는 사람들에게 추가 의견을 밝힐 기회를 제공했는데, 다음은 그 응답의 일부를 추린 것이다. “나는 흑인이 동물계에 가깝다고 생각한다. 그들은 다른 어떤 인종보다 빠르고 강하고 운동신경이 좋다. 그들은 또한 다른 인종에게 있는 지능과 윤리가 없다.” “흑인들 전반의 태도와 행동을 보자면, 짐승 수준의 행동을 하는 사람부터 제법 문명인답게 행동하는 사람까지 두루 존재한다.” “어떤 인종이 살인 범죄율이 가장 높은가. 살인을 저지르고도 후회하지 않는 사람들. 짐승처럼 구는 사람들.” 똑같은 범죄를 저질러도 백인들보다 흑인들에게 더 높은 형량을 부과하는 경향이 있고 통계수치를 보면 실제로 그렇다고 한다. 소설 제목이 왜 <앵무새 죽이기>일까? 소설을 읽기 전 나도 그것이 궁금했었는데 이 소설을 읽어보지 않은 사람들도 궁금하리라고 생각이 된다. 여기서 앵무새는 인간에게 아무런 해도 가하지 않고 다만 즐겁게 노래를 부르는 존재로서의 앵무새를 가리킨다. 그런 앵무새를 인간이 재미로든가 사격연습으로든가 하는 이유로 쏘아죽인다는 것이다. 이 소설에서는 무고한, 아니 선량하기까지했던 흑인 청년 톰 로빈슨을 사람들이 잔인하게 죽인 것을 뜻한다고 할 수 있다. 이 소설을 통해 사회적 약자의 인권문제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었을 뿐만 아니라 애티커스 핀치의 인간 됨됨이, 성품도 나에게 깊은 인상을 남겨주었다. 그는 이런 사람이 과연 세상에 존재할까 하는 의구심과 함께 잘하면 존재할 수도 있겠다..라는 생각이 드는 인물인데 굉장히 이성적이고 냉철하고 합리적이고 논리적이고 똑똑하고 지혜로우면서도 마음이 따뜻하고 다른 사람에 대한 배려심이 깊고 겸손하고 정직하고 신앙이 깊기까지 하다. 자녀를 교육하는 방식도 그렇고 다른 사람들을 대하는 부분도 그렇고 그를 본받고 싶다는 생각이 소설을 읽는 내내 많이 들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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