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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순원 단편선 '소나기'를 읽고
(문학과지성사-‘황순원 단편선 독 짓는 늙은이’에 수록) 소설가 황순원의 단편소설 ‘소나기’는 학창시절에 교과서를 통해서 배우기 때문에 대부분의 사람들이 알고 있다. 나도 중학교 때 국어시간에 이 작품을 공부했었다. 그때 국어선생님께서는 이 작품으로 모둠별로 간단히 연극을 하라는 주문을 하셨는데...내가 소녀 역할을, 작품 속 소년과 어울리지 않는 어떤 개구쟁이 남학생이 소년 역할을 했었던 기억이 난다. 아무튼 그런 추억이 있는 작품인데 다시 읽으니 반가웠다. 저자의 약력을 간단히 적자면 다음과 같다. 황순원은 1915년 평안남도에서 태어났다. 1939년 와세다 대학을 졸업한 후, 평양으로 돌아왔다가 1946년에 월남했다. 서울중고등학교 교사와 경희대 문리대 국문과 교수를 역임했다. ‘소나기’는 1953년 5월 [신문학]지에 발표되었다. 1980년부터 문학과지성사에서 ‘황순원전집’을 발간하기 시작하여 1985년 전 12권으로 완간했다. 2000년 서울 자택에서 세상을 떠났다. 다음은 작품의 줄거리이다. 서울서 살다가 시골로 이사를 온, 피부가 하얀 한 소녀가 개울가에서 물장난을 한다. 소년은 소녀를 발견하고서 관심을 보인다. 소년은 소녀를 좋아하지만 표현도 못 하고 들키지 않으려고 애쓴다. 소녀가 징검다리에서 앉아서 물장난을 하고 있고 소년은 거기를 건너야 하지만 비켜달라 말조차 하지 못 하고 기다리기만 한다. 소녀는 소년의 마음을 잘 안다. 그래서 소녀는 소년에게 조약돌을 던지며 “이 바보” 라고 말한다. 그 뒤로도 소년은 소녀를 모른체하지만 소녀는 소년에게 질문을 하며 더 적극적으로 다가간다. “얘, 이게 무슨 조개지?” “비단조개.” “이름두 참 곱다” “너 저 산 너머에 가본일 있니?” “없다” “우리 가보지 않을래? 시골 오니까 심심해 못 견디겠다.” “저래봬두 멀다.” “멀믄 얼마나 멀갔게? 서울 있을 땐 아주 먼 데까지 소풍 갔었다.” 그렇게 둘은 논과 도랑, 밭을 지나 산으로 가면서 허수아비 줄을 잡아 흔들어대기도 하고, 무 서리를 해서 먹기도 하고, 꽃을 꺾으며 논다. 소녀가 넘어져 무릎에 핏방울이 맺혔을 때 소년은 저도 모르게 생채기에 입술을 가져다대고 빤 뒤, 송진을 가져다가 문질러 발라준다. 둘이 재밌게 놀고 있는데 갑자기 먹구름이 몰려오고 빗줄기가 굵어진다. 소나기가 내린 것이다. 둘은 지붕이 찢어진 원두막으로 몸을 피하지만 비를 많이 맞고 소녀는 몸을 떤다. 비가 그친 뒤 흙탕물이 물어 소년은 소녀를 업고 개울가를 건넌다. 그 뒤 한동안 소녀는 나타나지 않다가 몇 일만에 개울가에 나타난다. 소년은 가슴이 두근거렸다. 소녀가 말한다. “그동안 앓았다.” “그날 소나기 맞은 것 때메?” 소녀가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소녀의 분홍 스웨터에 검붉은 진흙물이 묻어 있는데 소년은 그가 업어주다가 자신의 옷에서 옮겨간 것을 알고 부끄러움을 느낀다. 소녀는 아버지 사업이 망해서 시골로 내려오게 되었는데 고향집마저 남의 손에 넘어가게 되어 다시 이사를 가야 한다. 이 사실을 알고 있는 소년은 소녀가 이사가기전에 한번 만나려고 마음먹었는데 아버지께서 그 소녀가 죽었다는 소식을 전해주신다. 다음은 소년의 아버지와 어머니가 나눈 대화이다. “증손이라곤 기집애 그 애 하나뿐이었지요?” “그렇지. 사내애 둘 있던 건 어려서 잃구...” “어쩌면 그렇게 자식복이 없을까?” “글쎄 말이지. 이번 앤 꽤 여러 날 앓는 걸 약두 변변히 못 써봤다더군. 지금 같애서는 윤초시네도 대가 끊긴 셈이지. ...그런데 참 이번 기집애는 어린 것이 여간 잔망스럽지가 않어. 글쎄 죽기 전에 이런 말을 했다지 않어? 자기가 죽거든 자기 입던 옷을 꼭 그대루 입혀서 묻어달라구....” ‘자기가 죽거든 자기가 입던 옷을 꼭 그대루 입혀서 묻어 달라고’했던 소녀의 마지막 말이 긴 여운을 남긴다. 이 말을 들은 소년은 눈물을 펑펑 흘렸을 것이다. 이 소설을 읽으며 가장 크게 느낀 점은, 이것은 글인가 그림인가 할 정도로 장면 장면이 모두 눈앞에 선명히 그려지는듯한 느낌을 받았다는 것이다. 그만큼 작가가 인물이며 배경묘사를 섬세하게 잘했다는 뜻일 것이다. 앞에 개울이 흐르는 것 같고, 분홍색 옷을 입은, 얼굴이 하얀 소녀가 물장난을 치고 있고..얼굴이 까무잡잡하고 순진한 눈빛을 한 소년이 어쩔줄 몰라하는 모습...갖가지 꽃, 풀, 송아지, 원두막, 그리고 어두컴컴한 하늘과 소나기 등 이 모든 것들을 눈으로 보고 있는 것만 같았다. 결말에서 소녀가 죽어서 좀 갑작스러운 느낌을 받긴 했지만....너무 따지지 말고 소설을 소설로서 받아들여야 할 것 같다. 갑자기 찾아왔다가 짧은 순간 유지되다 갑자기 사라지는 소나기와 같이 소년과 소녀의 순수하고 아름다운 사랑도 이처럼 갑작스러웠고 이처럼 짧았다. 그래서 글의 제목이 ‘소나기’이다. 또 하나 흥미로운 사실은 유명한 시인 황동규가 황순원의 아들이라는 것이다. 유전자의 힘이 정말 놀랍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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