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두희의 ‘내 안에 살아 숨쉬는 역사’를 읽고
(출판사 – 청어람미디어)
이 책은 2004년도에 발행된 역사에세이다. 일제시대와 해방정국 시대에 대한 에세이 6편, 조선시대 인물에 대한 에세이 7편, 조선시대 제도와 정치에 대한 에세이 6편으로 이루어져있다. 저자는 조선시대를 연구하는 학자이고, 그래서 우리역사 중에서도 주로 조선시대에 있었던 역사적인 사실(대간제도, 집현전, 과거제도, 임진왜란과 병자호란, 예송 논쟁, 양반사회)과 인물들(정몽주, 정도전, 이방원, 조광조, 이황, 이이, 이순신)에 대해 대표적인 에피소드를 중심으로 소개하면서 역사로부터 오늘날 우리가 배워야할 점이나 아쉬운 점, 저자 나름의 생각 등을 밝히고 있다. 이 책은 어렵게만 느껴지던 우리역사를 쉽고 친근하게 느끼게 해주었다. 그리고 역사가 나와 상관없는 옛날이야기가 아니라 책 제목과 같이 역사가 내 안에 살아 숨 쉬는 느낌이 들게 해주었다. 이 책과의 인연은 참 독특하다. 대학생 때 책을 읽고 독서퀴즈를 내는 아르바이트를 한 적이 있었는데 이 책은 그 때 읽고 퀴즈를 내야했던 책 중의 하나였다. 아르바이트를 하기 위해서 읽어야할 책이 많았기 때문에 그때는 대충 대충 훑어보며 문제를 내기에만 급급했는데 나중에 제대로 읽어보니 정말 좋은 책이었다.
17개의 에세이 중에 맨 첫 번째 에세이인 ‘전쟁통에 사라진 큰형의 편지-단기 4283년 1월 1일’을 소개하려고 한다. (전쟁통에 편지가 사라진 게 아니라 형이 사라졌다는 말이다.) 저자는 1950년 1월 1일에 우리나라에 어떤 일들이 있었는지 나열하는 것으로 글을 시작한다. 제1회 고등고시 실시, 룩셈부르크 대한민국 승인, 이승만 대통령 내각책임제 개헌안에 불찬성 표명, 한미 방위 원조 협정 조인 등. 그런데 1950년 1월 1일은 저자에게도 매우 특별한 날이다. 어머니께서 돌아가시기 전에 낡은 편지 한 통을 남기셨는데 그것은 저자보다 열두 살 많은 큰 형이 남긴 유일한 유품이었다. 편지는 1950년 1월 1일에 형이 친구에게 보낸 것이었다. 휘문고등학교(당시는 휘문중) 야구선수였던 형은 친구에게 보낸 편지에서 좌우로 갈린 시대에서 우리는 어떤 이념으로 지내가야 할 것인가에 대한 고뇌를 토로하고 있다. 그리고 형은 그 해 6월 25일 전쟁이 일어난 날 학교에 간다고 나간 뒤 영영 돌아오지 않았다고 한다. 전쟁이 어머니에게 남긴 상처는 이뿐이 아니었다. 전쟁통에 큰 딸과 막내아들도 잃었다. 이어서 저자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흔히 역사는 집단의 기억을 기록한 것이라 한다. 그리고 그 집단은 항상 사회의 상층부에 있는 사람들만을 의미하는 것으로 치부된다. 그 안에는 왕과 정치가가 있고, 학자와 장군이 있으며, 이들에 의해 대변되는 사람들, 소위 사회의 지배층이 있다. 사료라 말해지는 과거의 기록은 이들에 의해 만들어진 것이다. 이것은 한국의 현대사라 해서 다를 것이 없었다. 한국 전쟁에서 피아간에 수백만의 사람들이 죽었지만, 전쟁사에서는 당사국들의 정치가, 외교관, 전략가들이 주인공일 뿐이다. 그러나 아무런 기록도 남기지 않았던 셀 수 없이 많은 사람들의 죽음과 고통은 무엇으로 기억되는가? 큰 형의 편지 한 통은 그 이름 없는 수많은 생명도 주어진 운명을 어떻게 헤치고 살아야 할지를 놓고 방황하고 불안해하였으며, 아름다운 추억과 우정과 그리운 고향 산천을 지닌 사람들이었음을 말해주는 것 같았다. 큰 형에 대해 그래도 나는 많은 것을 알고 있다. 그러나 큰형처럼 흔적도 없이 사라져간 수많은 사람들에 대해 나는 아무것도 아는 바가 없다. 이렇듯 내가 모르는 것은 역사가 아니며 기억해야할 가치가 없는 것일까? 큰 형이 남긴 편지는 내게 묻고 있는 것이다.’
나도 저자와 비슷한 생각을 한 적이 종종 있다. 일제시대 때 독립운동을 하다 돌아가신 분들이 많이 있는데 우리는 그 중에 유관순이나 안중근, 윤봉길 의사 등 몇 몇 분만 알고 있다. 물론 기록으로 이름이 남아있는 분들은 우리가 알고 있는 분보다 훨씬 많을 것이다. 그러나 독립운동을 하다 돌아가신 분 들 중에는 기록에 남아 있는 분보다 기록에 남아있지 않은 분들이 비교도 안 될 만큼 많을 것이다. 예를 들어 3.1 만세운동 때 거리로 뛰쳐나왔던 수많은 군중들과 그 가운데 일본의 총칼에 쓰러진 이름 모를 사람들이 얼마나 많을 것인가. 그 분들의 이름은 후세에 기억되지도 않고, 자손들이 독립유공자로 혜택을 받는 것도 아니다. 그 분들의 희생이 헛되다는 이야기가 아니라 그러한 사실들이 안타깝고 우리가 그러한 것들을 너무 생각하지 않고 살지는 않았는지 반성이 된다는 말이다. 그리고 특정 집단에 의해 특정 사건이나 중심인물, 집단에 대한 기록만을 남기는 역사 뒤에 한 명 한 명 소중한 수많은 사람들의 역사도 있다는 것을 한번쯤은 생각해보아야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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